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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시조시인 |
제4회 전국 훈민정음 독후감 공모대회에 많이 응모 해주신 참가자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수상하신 모두 분들에게도 큰 축하를 드립니다.
본 대회 작품 심사를 위하여, 심사위원 네 명이 8월 20일, 22일 그리고 27일에 걸쳐 세 차례 심도 있게 심사했습니다. 작품의 수준은 점차 좋아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번 총응모작은 전국 17개 시 · 도에 있는 학생과 일반참가 작품이 2,000여 편 이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독후감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려면, 그 책이 주는 강한 느낌 몇 줄기와 힘이 되는 말, 독자로서의 느낌 그리고 나아갈 방향의 제시 등으로 최소 원고 분량이 15매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A4 2장 가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A4 한 장이 채 안 되는 짧은 감상문으로 쓴 것이 많아서 많은 작품이 예선에서 탈락시켜야 하는 아쉬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초등학교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를 병기해야 뜻이 통하는 문장은 한글을 발전시켜야 하는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았고 이런 식의 글들은 대부분 대필이나 챗 GPT의 도움 흔적이 보여서 좋은 평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공문서에서나 볼 수 있는, ‘~하는바’ 등의 문장도 학생들의 눈높이서 좀 어울리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우리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의 70%가 한자에서 온 말이라고들 한다. 우리 말을 가꾸어야 할 학생들의 글에 한자에서 온 단어로 논문에서는 보이지만, 일상생활에서 보기 힘든 ‘고찰’ 같은 단어도 식상한 맛이 나서 내용은 좋으나 후한 점수를 주기가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아름다운 우리말 가꾸기에 큰 노력을 기울이는 작품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좋은 감상문은 뭔가 함축적이면서 낯설게 하기를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어려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고운 우리말을 찾아내고 엮어내는 노력이 이런 글쓰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3편이었습니다.
박희선의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을 읽고>와 김소명의 <사라진 훈민정음 네 글자와 현대 디자인에서의 재발견> 그리고 전은경의 <신뢰와 불신의 사이에서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을 읽고>를 놓고 심사위원들이 많은 숙고를 했습니다.
김소명의 작품은 마치 사라진 네 글자에 대한 작은 논문(paper) 같은 형식이라 존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한글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는다고 자랑하지만, 사실 로망스어, 중국어와 아랍어에도 영어 ‘F’ 음가가 있는데, 우리는 일본어를 따라가다가 이 음가를 잃어버렸다고 봅니다. 일본어에는 ‘F’ 음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음가를 살리는 방향으로 전개했더라면 더욱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라진 네 글자를 가지고 새로운 디자인에 활용한다는 생각은 산뜻했습니다.
전은경의 글도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 드는 문장이 많았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칭찬과 비난의 사다리를 끊은 사람이 혁신가라는 논리‘는 조금 비약이라고 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전개가 되었으면 합니다. ‘세종이 보았던 눈으로 타인을 신뢰하고 신뢰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세종을 기대하고 고대한다.’ 세상은 신뢰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재를 발굴하고 신뢰하고 키워야 해도 성공이 어려운 일이라’는 뜻은 좋았지만, 큰 주제를 바로 결론으로 과정이 힘이 너무 들어갔다는 생각입니다.
박희선의 글을 최고의 작품으로 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큰 흠결이 없는 작품으로, 현재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 탄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종대왕 창제한 훈민정음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사고가 굳어버린 것 같았는데, 이 소설은 단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흡인력 강한 시작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세종대왕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찾기 위해서 신하들과 문답식으로 풀어가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아비를 죽인 아들 문제는 그 아들을 능지처참한다고 본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라는 말이 좋은 관찰이었고, ‘가뭄이 지속되어 농사가 흉작이 예상되면, 하늘을 탓하거나 기우제를 지내는 것보다, 영농법을 개선하는 길을 찾는 것도 그 한 예이다.’ 이러한 생각은 금 광맥을 찾아내고 금을 캐내는 과정과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모처럼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살리는 글을 통해서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으며,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와 사회문제의 본질을 찾아 바루는 통치 방식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작품에 큰 박수와 축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