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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선(용인대학교 한국어 강사) |
나는 한국 사람이지만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그를 창조한 세종대왕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현재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학생들에게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나의 당연한 역할이자 자랑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세종대왕의 창제 이념’과 ‘훈민정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딱딱하고 굳어버린 지식을 전달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교재에서 항상 이야기하는 ‘백성을 위한 문자’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나의 굳은 지식은 학생들에게 세종대왕의 깊은 뜻을 전달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이 책은 굳어버린 내 지식을 촉촉하게 적셔줄 단비 같은 책이었다. 내가 이 책을 단숨에 몰입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마치 책 속에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감 나게 적혀 있는 대사는 마치 내가 집현전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고 공비와 함께 기본자를 만들 때는 내가 마치 공비가 되어 세종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발음을 해 보기도 했다. 김문과 정찬손과의 대사에서는 나 또한 세종대왕과 함께 개탄했고 최만리의 반대 상소문을 읽자니 숨이 막혀왔다.
책을 통해 알게 된 훈민정음 창제 과정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훈민정음이 음양오행을 기본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모든 만물은 음과 양, 오행을 기본으로 하니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 또한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야 함을 생각한 세종대왕의 생각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우리의 글자는 동양의 철학을 그대로 녹인 실로 과학적인 글자가 아닐 수 없다. 학생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전해 조금 더 한글의 창제 원리에 대해 풍성하고 근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 훈민정음에 대해 면밀히 알아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훈민정음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이 책에서 세종대왕의 성품과 사람을 대하는 방법, 그리고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을 알 수 있었다. 나아가 교사로서 교실을 운영하는 방법에서도 많은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역할과 책임을 언급하며 신하들의 긍지를 심어주는 장면을 보며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생각났다. 목표 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유학의 의미를 못 잡고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세종대왕과 같이 학생들에 대한 믿음을 표함과 더불어 우리 학급에서 이룰 목표와 책임을 부여해 학생들을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인상 깊었던 것은 세종대왕이 택했던 문답식 탐구이다. 이것은 교실에도 적용되는 이야기 같았다. 이러한 문답은 집현전에 있는 학자들이 스스로 답을 깨우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종대왕에게도 해답을 찾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었다고 한다. 본디 인간은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한다고 하지 않는가.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로 교사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학생들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교실 운영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세종대왕의 집현전 신하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나는 내 교실 운영 방법을 보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세종대왕을 통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백성이 아비를 죽이는 살인 사건을 보고 우리는 보통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의 결과를 질타하기 바쁠 것이다. 질타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안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달랐다. 결과를 비판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근본적인 원인에 초점을 두고 해결 방법을 찾고자 했다.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발 방지인 것이지 무분별한 질타가 아니다. 무엇이 이 세상에 더 필요한 사고방식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책에서는 백성들의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매해 기도하고 염원하고 있지만, 가뭄은 지속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때 세종대왕은 다른 관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원인을 해결할 수 없는 것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것에서 찾고자 했다. 농사가 되지 않을 때, 하늘(가뭄)을 탓할 것이 아니라 영농의 방법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어찌 보면 참 당연한 생각이지만, 지금까지의 나 또한 나의 잘못이나 부정적인 결과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만 했던 것 같다. 당연하게도 이런 사고방식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평생 기도하거나 남을 탓할 것이다. 세종대왕의 가르침은 앞으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원인을 찾아 극복해 내야겠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커다란 뜻이 있다면, 작은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신숙주의 삶에 대한 태도 또한 내 마음 한 편을 울렸는데 지금까지의 내 삶과는 반대되는 삶이라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또 책 구절 중 ‘재목을 잘 살펴서 그 쓰임을 적절히 하면 버릴 것이 없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마치 우리 인간은 누구도 불필요한 사람이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깊은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어 이 구절에서 한참을 머물렀던 것 같다. 그 쓰임을 찾는 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큰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대왕은 참으로 성인군자가 아닐 수 없다. 난 이렇게나마 세종대왕의 정신이 녹아든 글을 읽으며 세상을 보는 올바른 눈을 기르고자 한다. 또 나에게는 집현전의 신하들과 다름없는 예쁜 제자들에게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